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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평화의 길을 묻다 - 법륜 스님 즉문즉설

 

 

 

[산중한담] 생명평화의 길을 묻다-법륜 스님 즉문즉설 


센 고집 꺾으려는 나는 얼마나 고집 센 것이냐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싹’ 하면 괴로울 일 없어

즉문즉설(卽問卽設)이란 일방적인 설법과 달리 청중이 무엇이나 물으면, 그것에 대해 즉각 답해주는 문답식 법석이다. 지식이나 관념적 사고로는 무엇에나 걸림이 없는 무불통지(無不通知)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 현자는 답하지 않는다. 다만 묻는 자가 돌이켜 자기 마음을 보아 스스로 깨닫게 한다. 석가와 공자, 예수 등 성인들이 이미 어두움을 밝음으로, 고통을 행복으로 전환하도록 이끄는 방법이었다.

 

그 법석이 서울 도심에서 펼쳐졌다. 지난 30일 오후 6시30분 서울 정동 프란체스코수도회 강당에서였다. 지난 5년 동안 지리산을 출발해 전국을 걸었던 도법 스님을 비롯한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생명 평화운동’의 선구자 7명을 차례로 초청해 마련하는 ‘생명평화의 길을 묻다’는 법석이었다. 이날은 첫타자로 정토회 대표 법륜 스님이 나섰다. 이미 즉문즉설로 정평이 나있는 그다. 북한과 인도, 아프가니스탄의 어려운 이들을 도와 막사이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는 올해 북한 식량난이 악화돼 대형 아사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북녁동포들을 돕자며 70여일간 단식을 끝낸지 채 2개월이 되지 않는다.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의 공동체위원장인 황대권씨의 사회로 무려 3시간30분간 진행된 이 법석은 숨막히는 질의와 응답으로 이어졌다. 즉문즉답이다.

 

 

죽음? 안 죽어봐서 몰라, 관심도 없고

- 죽음이 있느냐, 죽어서 가는 정토세상이 있느냐? 
= 안 죽어봐서 모르겠다. 또 관심이 없다. 인도에서 굶던 사람들이 밥을 얻으면 그 자리가 정토다. 30~40년보다 더 좋은 세상이 된다면 미래 정토다. 인도의 빈민촌 아이들도 처음엔 한국에 오면 이곳이 정토라고 했다가 몇 년 지나고 차별을 받으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그래서 타방 정토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지금 즐겁게 산다면 그것은 유심정토다. 있느니, 없느니 그것은 큰 문제가 없다. 인도 불가촉천민촌인 둥게스와리에 사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곳에서 벗어나려고 하니 그곳은 지옥이다. 그러나 정토회의 행자들은 그들이 좋다는 한국을 놔두고 서로 그곳까지 가서 봉사할려고 하고, 봉사를 즐거움으로 알고 행복해하니 그곳이 바로 극락정토다.

 

 

-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는 게 최고인가? 
= 좋은 일도 내식대로만 하면 문제가 된다. 내가 좋다고 (상대를 고려하지않은 채) 지나가는 사람에게 뽀뽀하면 그것은 추행이다.

- 잘 생기셨는데, 연애는 해봤는가.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고 싶은 생각은 해보지 않았는가?  = 어릴 때는 연애도 해봤다. 그러나 결혼해서 애낳고 살 생각은 안 했다. 수행이란 자기 업식에 대해 알아가기 위함이다. 즉 자기 꼬라지를 보기 위함이다. 내가 만약 결혼해서 살았으면 이미 죽었을 것이다. 나는 결벽증이 있어서 내 생각을 옆사람에게 강요하고, 안 들으면 파르르 떨기도 한다. 내게 이성적으로 다가오는 여자들을 보면 하나같이 약간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이다. 결혼을 했다면 그런 사람들과 했을 테니 인생이 대충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있다.

 

 

혼자 살면 외롭고 같이 살면 귀찮아해, 왔다갔다 그게 가출

- 그럼 이미 결혼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 자기 마음대로 살려면 혼자 살아야 한다. 결혼하고 다른 사람과 같이 살려면 상대와 맞춰야 한다. 또 자식을 낳았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 자기 꼬라지 안 닮게 할려면 자기가 변해야 한다. 그러니 자식이 없는 스님들보다 자식이 있는 여러분이 열배 백배는 더 열심히 수행해야 한다. 자기 자식도 아닌 고아와 장애인들을 수십명 수백 명씩 돌보는 수녀님들도 계시지 않은가. 자기 인생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 아닌가. 불교의 핵심진리는 인연과보다. 하는 대로 받는 것이다.

- 그럼 결혼하지 말아야 하는가. 모두 출가해야하는가? 
= 결혼을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결혼을 했으면 결혼생활이 행복하도록 하고, 혼자 살면 혼자 사는 것이 행복하도록 해야 한다. 행복은 결혼 자체와는 상관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혼자 살면 외롭고, 같이 살면 귀찮아 한다. 그래서 왔다갔다하면 그게 가출이다. 귀찮아서 스님되어야겠다고 하는 것도 그런 식이라면 가출이다. 진정한 출가는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고, 같이 살아도 귀찮아 하지 않는 것이다.  

 

 

남편이 죽으면 부인이 울면서 하는 말, 다 제 걱정 뿐

- 같이 사는 사람으로부터 끊임없이 상처를 받아 괴롭다. 공격적인 사람과 어떻게 해야 하나. 
= 결혼해 살기 힘들 때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 제일 쉬운 방법은 ‘안녕히 계세요’하고 헤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고전에서도 도망가는 36계는 최후의 방법이다. 헤어질 수 없다면 숙여라. (수행이란) 상대를 어떻게 하기보다는 자기가 어떻게 행동할 것이냐다. 자신이 뻗뻗하니 괴롭고,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니 괴로운 것이다. 사랑을 하면 괴롭지 않다. 설악산 단풍 구경 가서 ‘참 좋다’, ‘참 좋다’고 기분 좋아하면 설악산이 좋으냐 내가 좋으냐. 설악산 단풍을 사랑하는 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남을 이해 못하면 내가 답답하고 남을 이해하면 내가 좋은 것이다. 상대가 고집이 세다면 그 센 고집을 꺾어버리려는 나는 얼마나 고집이 센 것이냐를 알아야 한다. 

 

 

- 같이 사는 사람을 어떻게 바꿀수 있도록 도울까요? 
= 남 걱정하지 말고 자기 인생부터 챙겨라. 내가 자유롭고 행복해져서 도와주는 게 좋은가, 내가 괴로워하면서 돕는 게 빠른가. 사람은 남 생각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남편이 죽으면 부인이 울면서 그런다. ‘스님 이제 저는 어떻게 살아요’ 그런다. 그리고 또 다른 여자는 ‘아이고, 저 어린 것들을 데리고 이제 어떻게 살아요?’ 그런다. 그것 봐라. 남편 걱정, 자식 걱정 하는게 아니고 다 제 걱정만 하지 않은가. 인간이 그렇다. 저밖에 모른다. 

수행은 노력하면서 애쓰면서 하는 게 아니다

 

 

-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가? 
= 축구 선수는 야구보다 축구가 스포츠 중에 최고라고 한다. 야구선수는 자기가 해보니 농구보다 야구가 낫다고 한다. 자신이 보기엔 그런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 어떤 것보다 (객관적으로) 낫다고는 할 수 없다. 수행엔 여러가지 방법이 있다. 근기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달리 수행할 뿐이다. 정토종에 가서 물으면 염불을 하라고 하고, 남방불교에 가면 위빠사나 수행을 하라고 한다. 어떤 수행을 하든 자유롭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수행은 노력하면서 애쓰면서 하는 게 아니다. 그냥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겠다고 다짐했다고 치자.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기로 한 시간이 됐을때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야하는데’만 하고 정작 일어나지 않으면서 ‘일어나고는 싶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실은 ‘일어나고 싶은 게 아니고, 일어나기 싫은 것’이다. 실은 ‘일어나야 하는데’를 혼자 열 번만 되뇌어 보며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면,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기 싫다)’는 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정말 일어나고 싶다면 ‘일어나야 하는데, 일어나야 하는데’ 할 것이 아니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싹’ 일어나면 된다.

 

 

늘 각오만 하니 스트레스를 받고 인생이 괴로운 것이다. 그냥 ‘싹’ 하면 괴로울 일이 없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니 밥도 많이 먹어야 하고, 술도 많이 마셔야 하고, 잠도 많이 자야 한다. 끊임없이 방법을 찾는 것은 번뇌다. 그냥 ‘싹’ 해라. 수행도 그처럼 해야 한다. 너무 심각하게 하지 말고, 가볍게 해야 한다. ‘아! 내가 깜박 속았네’하면서 즉각 마음을 돌리면 되는 것이다. 우리 마음이 어리석어 괴로운 것이다. 그래서 마음에 (고통의 원인인) 집착이 있다는 것을 꿈에서 깨듯이 깨면 되는 것이다.

 

 

뭐 한 게 있다고 세상이 바뀌겠나, 옳다면 오직 갈 뿐 

- 붓다가 생명평화의 길을 찾기 위해 출가한 것인가. 
= 세상은 하나가 살기 위해선 하나는 죽어야 하고, 하나가 이익을 보기 위해선 하나는 손해를 본다고 한다. 거기서 내가 어떻게 살아나느냐가 학문이다. 그러나 붓다는 중생계의 모순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하며 ‘함께 사는 길’ 을 찾기 위해 출가했다. 그리고 마침내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다’는) 연기의 법칙을 깨달았다.

- 생명평화 운동을 한다고 세상이 바뀌는가. 
= 그런 의문이 생기는 것은 인과법을 믿지 않거나 욕심이 많기 때문이다. 천 번 해야 할 갈 길을 한 번 하고 뒤돌아보고, 두 번 하고 이게 될까 의심하고, 세 번 하고 이건 안 되는 걸꺼야 라고 하는게 보통사람들 생각이다. 우리가 뭐 한 게 있다고 세상이 바뀌겠는가. 단식 좀 했다고, 좀 걸었다고, 절 좀 했다고 세상이 바뀌겠는가. 이것이 옳다면 오직 갈 뿐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바뀌어지면 좋고 안 바뀌어도 좋다.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

 

 

글 출처 _ '조현' 종교명상 전문기자의 글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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