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空] 공이란 무엇인가?
그림자를 진짜로 착각하다
옛날 어떤 장자의 아들이 새로 부인을 맞이하여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였다.
한 번은 그 남편이 부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부엌에 가서 포도주를 가지고 오시오. 같이 마십시다.”
부인은 가서 술독을 열다가 자기 그림자가 술독 안에 있는 것을 보고는
매우 화를 내면서 돌아와 남편에게 말하였다.
“당신은 여자를 술독 안에 감추어 두고 왜 또 나를 맞아들였소?”
남편이 직접 부엌에 들어가 술독을 열었는데 이번에는 자기 그림자를 보고는 부인에게 화를 내면서
남자를 감추어두었다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두 부부는 서로 분해하면서 제 각기 자기 말이 사실이라고 우겼다.
마침 남편의 친구인 어떤 범지가 우연히 지나다가 이들이 다투는 것을 보고 그 까닭을 물어보고는
그도 가서 살피다가 제 그림자를 보고 장자의 아들을 원망하면서
“자기도 친한 친구를 독 안에 감추어두고 겉으로 싸우는가?”라고 말하고 곧 그를 버리고 떠났다.
다시 장자가 받드는 어떤 비구니가 그들이 그렇게 싸운다는 말을 듣고 가서 술독 속에 있는
비구니를 보고는 또 화를 내면서 가버렸다.
조금 뒤에 어떤 도인이 가서 보고 그것이 모두 그림자인 것을 알고는 탄식하면서 말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어리석고 미혹하여 공(空)을 실(實)이라고 생각하는구나.”
그리고 나서 그 집주인의 아내를 불러 같이 들여다보고 말했다.
“내가 부인을 위하여 독 속의 사람을 내어 보이리다.”
그리고서 큰 돌을 가져가 술독을 때려 부수어 아무 것도 없이 만들었다.
그들 부부는 그것이 다름 아닌 자기 그림자였던 것을 알고 제각기 부끄러워하였다.
부처님은 이것을 비유로 드시면서 “그림자를 보고 싸우는 것은 삼계의 사람들이 오온과 사대가 괴롭고
공한 몸임을 알지 못하고 삼독으로 생사가 끊어지지 않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잡비유경》하권, 한글장18책 622-623쪽
중생이 윤회하는 이유
보살마하살은 일체법의 성품이 공함을 알고 마음을 일으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가운데서는 법에 실체라든가 혹은 항상됨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범부가 색ㆍ수ㆍ상ㆍ행ㆍ식에 주착(住着)하니 범부는 색의 모습을 취하고 수ㆍ상ㆍ행ㆍ식의 모습을 취하여 자아라는 마음을 두고, 안팎의 법에 주착하는 까닭에 나중 몸의 색ㆍ수ㆍ상ㆍ행ㆍ식을 받는 것이다. 그러한 인연으로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근심과 고통과 번뇌를 벗어날 수가 없어서 다섯 갈래 윤회의 길을 왕래하는 것이다.
《마하반야바라밀경》 제25권, 한글장204책 128-129쪽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옛부터 갖가지로 뒤바뀐 것이 마치 어리석은 사람이 사방을 장소를 바꾼 것과 같아서, 사대(四大)를 잘못 알아 자기의 몸이라 하며, 육진(六塵)의 그림자를 자기의 마음이라 한다. 비유하면 병든 눈이 허공꽃[空花]이나 제이의 달[第二月]을 보는 것과 같다.
선남자여, 허공에는 실제로 꽃이 없는데 병든 자가 망령되이 집착을 하나니, 허망한 집착 때문에 허공의 자성을 미혹할 뿐 아니라, 또한 실제의 꽃이 나는 곳도 미혹하느니라.
이런 까닭에 허망하게 생사에 헤매임이 있으니 그러므로 무명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무명이란 것은 실제로 체(體)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마치 꿈 속의 사람이 꿈꿀 때는 없지 아니하나 꿈을 깨고 나서는 마침내 얻을 바가 없는 것과 같으며, 뭇 허공꽃이 허공에서 사라지나 일정하게 사라진 곳이 있다고 말하지 못함과 같다.
왜냐하면 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이 남이 없는 가운데서 허망하게 생멸(生滅)을 보니,
그러므로 생사를 윤회한다고 이름하느니라.
《원각경》 한글163책 563쪽
제일의공경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해 설법하리라. 이것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마지막도 좋으며, 좋은 뜻과 좋은 의미로서 순수하고 하나 같다. 원만하고 깨끗하여 범행이 청정한 것이다. 그래서 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이라고 한다. 제일의공이란 무엇인가?
눈은 생길 때에도 온 곳이 없고, 멸할 때에도 간 곳이 없다. 이와 같이 눈은 진실이 아니면서 생기고, 생겼다가는 다 소멸하나니 업보(業報)는 있지만 지은 자가 없느니라. 이 쌓임이 소멸하고 나면 다른 쌓임이 이어받나니 세속의 범주와는 다르다. 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세속의 범주란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니, 무명을 인연하여 행위가 있고, 행위를 인연하여 의식이 있다. 이렇게 전개되어 고통이 생긴다. 그리고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소멸한다’는 것이니,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행위가 없고, 행위가 소멸하기 때문에 의식도 소멸한다. 이렇게 전개되어 고통도 없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제일의공경이라 한다.
《잡아함경》 제13권, 한글장5책 381쪽
세간의 공
“세존이시여! 세간은 공(空)이라 하셨는데, 어떤 것을 세간의 공이라 하십니까?”
“눈이 공이요,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법도 공이며, 내 것이라는 것도 공이다.
이는 본바탕이 그렇기 때문이다. 눈이 사물을 보고 느끼는 감정인 즐거움이나 괴로움,
또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것 역시 공이니라. 귀ㆍ코ㆍ혀ㆍ몸ㆍ뜻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잡아함경》 제9권, 한글장5책 230쪽
부처님께 예배하려면
그때에 존자 수부티는 왕사성의 기사굴산의 어떤 한 산 기슭에서 옷을 깁고 있었다. 그는 오늘 세존께서 남섬부주로 오시는데 사부대중이 모두 모인다는 말을 듣고서 ‘나도 지금 가서 여래님께 문안하고 예배하리라’ 생각하였다.
그는 옷 깁기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 발을 들어 내딛었다. 그때 그는 다시 생각하였다. ‘여래의 형상이란 무엇인가. 세존이란 바로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이 그것인가. 가서 보는 것이 어쩌면 땅ㆍ물ㆍ불ㆍ바람의 사대(四大)인 것은 아닐까. 일체 모든 법은 다 비고 고요하여 지을 것도 없고 지어진 것도 없다. 그것은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신 것과 같다. 즉
만일 누구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또 가장 높은 이께 예배하려 하거든
온(蘊)과 계(界)와 제입(諸入)들
그것은 모두 다 덧없다고 관찰하라.
옛날 과거의 부처님과
또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지금 현재의 이 부처님처럼
그것은 모두 다 덧없느니라.
만일 부처님께 예배하려 하거든
지난 과거나 장차 올 미래나
그리고 지금의 현재에 있어
그것 모두 공한 법이라 관찰하여라.
또 만일 부처님께 예배하려 하거든
지나간 과거와 장차 미래와
또 현재 모든 부처님은
<나>가 없는 것이라 생각하여라.
그 속에는 <나>도 없고 목숨도 없으며 남도 없다. 짓는 자도 없고 지어진 것도 없으며, 형용할 것도 없고, 가르칠 것도 없다. 모두는 비고 고요한데 대체 여기에서 <나>란 주인이 있다는 말인가. 나는 지금 진여의 법 무더기에 귀의하리라.' 이렇게 생각한 존자 수부티는 도로 앉아 옷을 기웠다.
《증일아함경》 제28권, 한글장10책 69-71쪽
공(空)이라는 한 글자가 일체법을 포섭한다.
한 가지 법구로서도 일체법을 다 포섭할 수 있으니 그 한 가지 법구란 ‘공’의 법구를 이른다. 왜냐하면 일체법이 모두 허공같기 때문이다.
《대집대허공장보살소문경》 제6권, 한글장54책
18가지 공
또 수보리야,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시 대승이 있다.
이른바 내공(內空: 세간법이 空性임), 외공(外空: 출세간법이 공성임), 내외공(內外空: 세간과 출세간법이 공성임), 공공(空空: 공성도 공성임), 대공(大空: 緣已生法이 공성임), 제일의공(第一義空: 明法이 공성임), 유위공(有爲空: 有爲法이 공성임), 무위공(無爲空: 無爲法이 공성임), 필경공(畢竟空: 필경 즉 末究竟法이 공성임), 무시공(無始空: 無始 즉 本究竟法이 공성임), 산공(散空: 아래로 흩지 못하는 것 즉 果法이 공성임), 성공(性空: 만들어내는 것 곧 因法이 공성임), 자상공(自相空), 제법공(諸法空), 불가득공(不可得空: 모든 법의 自相이 불가득이니 공성임), 무법공(無法空: 相), 유법공(有法空: 性), 무법유법공(無法有法空: 性相의 일체법이 공성임)이다.
《마하반야바라밀경》 제5권, 한글장203책 119쪽(괄호 속의 설명은 해당경의 해제20-21쪽에서 참고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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